
영웅이란 올누드작품은 한국사진방송에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시야가 넓고 깊을 수밖에 없다. 주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아랫것들과는 비교될 수 없었고 주변의 정세나 상황을 분석하여 닥쳐올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자 들이
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가 위치하고 있는 자리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말초적이고 단세포적인 아랫것들과의 유일한 차이다.
그에 비하여 아랫것들이란 말 그대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무리들이다. 단상아래에 도열한 그 무리들의 눈에는 그것들은 오로지 영웅의 존안과 앞 사람의 뒤꼭지 외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자들이다. 또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무리들이다.
칭기스칸은 호레즘에 보낸 사신들이 두 차례나 살해당한 것을 교묘하게 이용을 한다. 어쩌면 그렇게 되도록 유도하였을 것이다. 사신들이 가장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처절하게 살해당했음을 선전하여 모든 아랫것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길을 당겼다.
호레즘 샤의 아랫것인 이날축도 여느 아랫것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여서 앞 뒤 판단하기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몽골사신들을 두 번 씩이나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두어 명은 살려서 돌려보냈는데, 결코 곱게 보내주지 않았다. 온갖 생체 실험을 다 하여 돌려보냈던 것이다. 만약에 이날축이 제대로 된 인간이서 장난이 아닌 인류공영을 위한 생체실험을 성실히 했다면 그때 이미 줄기 세포 주 확립이 가능했을 것이다.
칭기스칸이 대칸이 되기까지에는 탱그리의 가호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칭기스칸의 영특한 두뇌에는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과 절망의 상황을 절묘하게 반전시킬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진 세포가 포함되어 있었다. 호레즘을 공격하기에 앞서 몽골인들의 가슴에 분노를 일구어냈지만 호레즘의 경우는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서도 호레즘 샤는 칭기스칸과 버금가는 영토를 정복한 걸출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아랫것들이란 이익이 있으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칭기스칸은 잘 알고 있었다. 황박사 사태에서 증명되었듯이 330조의 국익이 창출 된다는데 진실 따위가 왜 필요한가? 이런 미친 에너지는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여 그 어떤 힘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
그 정도의 진리의 속성을 칭기스칸은 잘 알고 있었다.
"대칸이 말하노니 황족이라도 전리품의 옆에 서서는 안 된다. 모든 전리품은 우리의 모든 형제들에게 공평하게 분배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레즘의 모든 아름다운 귀부인들은 우리 형제들의 아이를 잉태하여야 될 것이다."
물욕에 이어 본능적인 욕구 하나를 더 언질하자 느닷없이 호레즘의 처녀들이 풀레이보이지 표지모델보다 한 수 위라는 유언비어가 마구 떠돌았다.
이것역시 진리의 속성이다.
병사들의 귓가에는 호레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고 눈물로 얼룩진 처녀들의 속살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들은 비명소리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귀를 찢는 아비규환의 비명소리가 잦아들면 괜스리 불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강간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랑에 겨워하는
사랑 놀음은 싱거워서 도대체 견딜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공포에 질려 허둥지둥 도망치는 어린소녀를 뒤에서 낚아채어 무자비하게 나뒹굴어져야 한 것 같은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스스로 옷을 벗어던지는 나긋나긋한 여인은 썩은 생선처럼 역겹게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임신부의 아랫배를 그어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칼을 사타구니사이에 집어넣고 여인들의 옷을 아래에서 위까지 북북 찢어 버리고 죽을둥 살둥 해야 비로소 한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 살육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천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유럽에서 칭기스칸의 이미지는 희대의 살인마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영웅 호레즘 샤는 그제야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몽골군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사마르칸트는 상업지구이다 보니 계산이 밝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동서를 있는 상인들의 교역으로 번영을 이룩한 곳이 사마르칸트다. 몽골군이 계산보다 훨씬 빠르게 엄청난 장거리를 이동하면서도 전력의 손실도 없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일이 꼬여가고 있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몽골의 기병들은 양이나 염소, 소, 낙타, 말떼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간다. 그들은 가축들에게 장비를 운반하게도 하고
식량으로 쓰기도 하였으며 오랫동안 여자들을 만나지 못했을 때는 가축들의 음부에 자신의 그것을 깊숙이 박아 넣고 주체 못할 욕정을 해소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호레즘 원정의 경우엔 다른 가축은 전혀 없이 병사마다 여섯 마리의 말들만 이끌고 타고 있던 말이 지치면 바꿔 타면서 질풍같이 내달렸던 것이다. 칭기스칸의 전략은 항상 이런 식으로 파격이었다. 모든 사람이 생각할수 잇는 전술보다는 파격적인 전술을 구사하여 단숨에 허를 찌르는 것이 그의 주특기였다. 계산 빠른 호레즘 샤가 계산할것이란 것을 이미 계산하고 있었기에 계산할 수 없는 파격을 구사한 것이다. 바르쿤 칼둔에서 탱그리를 향해 두 팔을 뻗쳐 올렸을 때 이미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 되리라는 것을 예측 했을 것이다. 영웅의 면면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호레즘의 관문인 오트라르성을 지키고 있던 이날축은 결사항전을 펼쳤다. 하지만 애초부터 진다는 생각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칭기스칸이었다. 전쟁에 있어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정신 상태다. 진다는 것을 추호도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들과 혹시라도 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칭기스칸에게 있어서 전쟁은 재미있는 놀이였고 질수고 있다는 것을 가정한 이날축으로선 오로지 버티는 것만으로도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칭기스칸은 숱한 전쟁을 통하여 수 없이 다양한 승리를 경험하였던 교활한 푸른 이리다. 그는 오트라르를 오고타이에게 맡기고 주력군을 이끌고 사마르칸트를 향하여 슬쩍 빠져나가 버렸다.
역시 파격이었다.
사마라칸트로 향하는 도중에 작은 성 부하라를 함락시키고 성직자와 기술자와 예쁘고 젊은 여자들을 심사하여 통과한 자들만 성 밖으로 내 몰고 성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자비하게 초토화 시킴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호레즘에 각인 시켰다.
오토라르와 사마르칸트는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부하라의 사태를 전해들은 오트라르와 사마르칸트의 신하들과 백성들, 특히 아직도 자신이 무자비한 군인들에게 강간당할 능력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미모의 여자들은 무조건 항복을 원했다. 항복을 하면 살려준다는 몽골인들의 교묘한 선전 공세에 자신의 정조를 내건 여자들이 먼저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이날축은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살려만 준다면 화장실 청소 당번을 매일 맡겠다며 목숨을 구걸한다. 그러나 이날축의 귀와 눈에는 펄펄 끓는 수은이 부어졌다.
오늘 날 오토라르의 유적지는 움푹움푹 패인 흙 무더기 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몽골군은 이곳에서 단 한 점의 전리품도 챙기지 않고 깡그리 파괴하여 버렸기 때문이다.
호레즘 샤, 무함마드는 혼자라도 살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무함마드에게 버림받은 사마라칸트는 움직이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무참한 대 학살이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
과수원과 작은 숲이 정겨웁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들판,
이름모를 수초와 연꽃이 만발한 연못,
평화스러운 농지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
기온은 온화하여 춥지도 덥지도 않았고,
공기도 쾌적한 무릉도원이었다."
칭기스칸의 참모인 거란인 야율초재의 사마라칸트에 대한 기록이다.
칭기스칸은 제베와 슈베데이에게 무함마드를 저승까지 정중히 모시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제까지 대륙의 절반을 호령하던 영웅 무함마드는 공포에 질려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무함마드의 추격대는 그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시 전체를 무자비하게 몰살을 시키는 파격을 저지르며 무함마드를 압박하였다. 이렇게 돌아가자 백성들은 자신들의 영웅 무함마드를 칭기스칸보다 더 악랄한 저승사자로 여겼다.
칭기스칸의 유일한 맞수, 영웅 무함마드는 찬밥 한 덩이 구걸할 곳을 찾지 못하고 카스피해의 어느 섬 안에서 굶어죽고 말았다.
무함마드의 추격대는 그가 죽고 난 뒤에도 회군을 하지 않고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지나 서쪽으로 진군을 하면서 약탈과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하였다. 그러다 중동의 모랫 바람에 진력이 난 그들은 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돌려 아르제바이잔과 그루지야 지역을 초토화 시키며 흑해연안의 초원지대인 카프카스에서 8만명의 러시아와 킵착의 연합군과 마주쳤다. 8만명의 연합군을 한 순간에 궤멸시킨 몽
골군은 겨우 2만명이었다.
그들은 러시아의 귀족들을 잡아다가 땅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고 술판을 벌렸다. 움직여 술잔이 넘치거나 쏟아지면 가차 없이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술판이 끝났을 때 그 아래에 있던 귀족들은 겁에 질려 똥오줌을 지리면서 모두 죽어있었다. 전대미문의 학살자 제베와 슈베데이의 몽골군은 돌아갔으나 칭기스칸의 큰 아들 조치는 그 지역에 남아서 킵차크 한국을 세운다.
한편 칭기스칸의 주력군은 무함마드의 아들 잘랄웃딘을 추격하고 있었다. 호레즘의 옛 수도 우르겐치에서 잘랄웃딘은 1년 동안 항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가 1년이나 버티자 칭기스칸은 예의 초토화 작전으로 이웃 도시 아프가니스탄과 후라산의 쿠
르드족을 잔인하게 도륙을 하였다. 그 동쪽의 발흐 지역도 짓밟아 버렸다. 한나라의 장건이 찬란한 불교의 꽃이 핀 나라이며, 큰 절마다 3000명의 승려들이 수행을 하였다고 소개하였던 대하국이 바로 그곳이다. 당나라의 삼장법사도 대당 서역기에 그렇게 기록을 했던 곳이다. 찬란한 불교의 불꽃은 그렇게 사그러 들고 말았다.
발흐를 페허로 바꾸고 지금의 이란의 한가운데의 니샤프르에서 칭기스칸의 사위 토쿠차르가 전사하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남편과 함께 전장을 누비던 토쿠차르의 과부는 남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니샤프르의 모든 주민들을 죽이는 데만 꼬박
사흘, 행여나 살아있는 것들이 있을까봐 확인하는데 만도 또 사흘이 걸렸다. 그 젊은 아낙은 그 곳에서 단 한가지의 전리품도 챙기지 않고 오히려 남겨 두었다.
산더미 보다 더 많은 시체들을 .....
칭기스칸의 손자 무투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명한 바미안의 석불앞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진노한 칭기스칸은 자신이 직접 선봉에 서서 학살을 자행 하였다. 움직이는것은 무엇이건 부수고 죽였다. 후에 사람들은 바미안을 저주받은 도시라고 불렀다.
1221년의 일이었다.
수백 년 후, 그 바미안의 대 석불은 이슬람 원리주의자 탈레반군에 의하여 폭파되어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높이 53미터의 거대한 불상이 폭싹 내려앉는 장면 은 지 구 촌 의 모 든 테 레 비 를 통 하 여 중 계 되 었 다 .
2001년 2월의 일이다.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는 법,
모든 것은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 되는 법,
모든 생명은 지켜져야 될 올바른 진리가 있는 법,
설사 미물의 살육이라도 하늘의 뜻이 아닌 법"
대륙의 반대편 산동의 도사, 장춘진인 구처기가 수만리 떨어진 그 곳에 나타나 칭기스칸에게 하늘의 이치를 일깨워 주었다. 미인과 성직자 기술자 지식인과 현자들을 우대하는 칭기스칸은 그의 쓴 소리를 다소곳이 받아들이고 이슬람 원정 6년 만에 귀환을 하게 된다.
1225년의 일이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이었다.
몽골의 스텝들이 사다 달라고 부탁한 약이 있었다. 춥지 않게 피부에 바르는 약,
추운데서 활동하는 빙상 선수들이나 발레리나들이 바르는 연고인데 그것을 바르면 춥지 않다고 했다. 무슨 그런 약이 다 있을라고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한편으론 요즈음이 어떤 세상인가? 비아그란가 뭔가 하는 약도 있어 고자에 가까운 사람도 칭기스칸 못지않게 용을 쓸 수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어떤 기록을 보면 칭기스칸은 생전에 500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고 하는데, 어떤 근거에서 그런 계산을 하였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손자 쿠빌라이가 옹기라트 소녀들을 사흘에 여섯 명씩을 자신의 침실로 불러 들였다고 하는데 칭기스칸은 겨우 500명이라니?
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가 위치하고 있는 자리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말초적이고 단세포적인 아랫것들과의 유일한 차이다.
그에 비하여 아랫것들이란 말 그대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무리들이다. 단상아래에 도열한 그 무리들의 눈에는 그것들은 오로지 영웅의 존안과 앞 사람의 뒤꼭지 외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자들이다. 또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무리들이다.
칭기스칸은 호레즘에 보낸 사신들이 두 차례나 살해당한 것을 교묘하게 이용을 한다. 어쩌면 그렇게 되도록 유도하였을 것이다. 사신들이 가장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처절하게 살해당했음을 선전하여 모든 아랫것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길을 당겼다.
호레즘 샤의 아랫것인 이날축도 여느 아랫것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여서 앞 뒤 판단하기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몽골사신들을 두 번 씩이나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두어 명은 살려서 돌려보냈는데, 결코 곱게 보내주지 않았다. 온갖 생체 실험을 다 하여 돌려보냈던 것이다. 만약에 이날축이 제대로 된 인간이서 장난이 아닌 인류공영을 위한 생체실험을 성실히 했다면 그때 이미 줄기 세포 주 확립이 가능했을 것이다.
칭기스칸이 대칸이 되기까지에는 탱그리의 가호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칭기스칸의 영특한 두뇌에는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과 절망의 상황을 절묘하게 반전시킬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진 세포가 포함되어 있었다. 호레즘을 공격하기에 앞서 몽골인들의 가슴에 분노를 일구어냈지만 호레즘의 경우는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서도 호레즘 샤는 칭기스칸과 버금가는 영토를 정복한 걸출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아랫것들이란 이익이 있으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칭기스칸은 잘 알고 있었다. 황박사 사태에서 증명되었듯이 330조의 국익이 창출 된다는데 진실 따위가 왜 필요한가? 이런 미친 에너지는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여 그 어떤 힘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
그 정도의 진리의 속성을 칭기스칸은 잘 알고 있었다.
"대칸이 말하노니 황족이라도 전리품의 옆에 서서는 안 된다. 모든 전리품은 우리의 모든 형제들에게 공평하게 분배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레즘의 모든 아름다운 귀부인들은 우리 형제들의 아이를 잉태하여야 될 것이다."
물욕에 이어 본능적인 욕구 하나를 더 언질하자 느닷없이 호레즘의 처녀들이 풀레이보이지 표지모델보다 한 수 위라는 유언비어가 마구 떠돌았다.
이것역시 진리의 속성이다.
병사들의 귓가에는 호레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고 눈물로 얼룩진 처녀들의 속살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들은 비명소리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귀를 찢는 아비규환의 비명소리가 잦아들면 괜스리 불안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강간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랑에 겨워하는
사랑 놀음은 싱거워서 도대체 견딜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공포에 질려 허둥지둥 도망치는 어린소녀를 뒤에서 낚아채어 무자비하게 나뒹굴어져야 한 것 같은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스스로 옷을 벗어던지는 나긋나긋한 여인은 썩은 생선처럼 역겹게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임신부의 아랫배를 그어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칼을 사타구니사이에 집어넣고 여인들의 옷을 아래에서 위까지 북북 찢어 버리고 죽을둥 살둥 해야 비로소 한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 살육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천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유럽에서 칭기스칸의 이미지는 희대의 살인마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영웅 호레즘 샤는 그제야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몽골군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사마르칸트는 상업지구이다 보니 계산이 밝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동서를 있는 상인들의 교역으로 번영을 이룩한 곳이 사마르칸트다. 몽골군이 계산보다 훨씬 빠르게 엄청난 장거리를 이동하면서도 전력의 손실도 없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일이 꼬여가고 있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몽골의 기병들은 양이나 염소, 소, 낙타, 말떼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간다. 그들은 가축들에게 장비를 운반하게도 하고
식량으로 쓰기도 하였으며 오랫동안 여자들을 만나지 못했을 때는 가축들의 음부에 자신의 그것을 깊숙이 박아 넣고 주체 못할 욕정을 해소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호레즘 원정의 경우엔 다른 가축은 전혀 없이 병사마다 여섯 마리의 말들만 이끌고 타고 있던 말이 지치면 바꿔 타면서 질풍같이 내달렸던 것이다. 칭기스칸의 전략은 항상 이런 식으로 파격이었다. 모든 사람이 생각할수 잇는 전술보다는 파격적인 전술을 구사하여 단숨에 허를 찌르는 것이 그의 주특기였다. 계산 빠른 호레즘 샤가 계산할것이란 것을 이미 계산하고 있었기에 계산할 수 없는 파격을 구사한 것이다. 바르쿤 칼둔에서 탱그리를 향해 두 팔을 뻗쳐 올렸을 때 이미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 되리라는 것을 예측 했을 것이다. 영웅의 면면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호레즘의 관문인 오트라르성을 지키고 있던 이날축은 결사항전을 펼쳤다. 하지만 애초부터 진다는 생각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칭기스칸이었다. 전쟁에 있어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정신 상태다. 진다는 것을 추호도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들과 혹시라도 질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칭기스칸에게 있어서 전쟁은 재미있는 놀이였고 질수고 있다는 것을 가정한 이날축으로선 오로지 버티는 것만으로도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칭기스칸은 숱한 전쟁을 통하여 수 없이 다양한 승리를 경험하였던 교활한 푸른 이리다. 그는 오트라르를 오고타이에게 맡기고 주력군을 이끌고 사마르칸트를 향하여 슬쩍 빠져나가 버렸다.
역시 파격이었다.
사마라칸트로 향하는 도중에 작은 성 부하라를 함락시키고 성직자와 기술자와 예쁘고 젊은 여자들을 심사하여 통과한 자들만 성 밖으로 내 몰고 성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자비하게 초토화 시킴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호레즘에 각인 시켰다.
오토라르와 사마르칸트는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부하라의 사태를 전해들은 오트라르와 사마르칸트의 신하들과 백성들, 특히 아직도 자신이 무자비한 군인들에게 강간당할 능력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미모의 여자들은 무조건 항복을 원했다. 항복을 하면 살려준다는 몽골인들의 교묘한 선전 공세에 자신의 정조를 내건 여자들이 먼저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이날축은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살려만 준다면 화장실 청소 당번을 매일 맡겠다며 목숨을 구걸한다. 그러나 이날축의 귀와 눈에는 펄펄 끓는 수은이 부어졌다.
오늘 날 오토라르의 유적지는 움푹움푹 패인 흙 무더기 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몽골군은 이곳에서 단 한 점의 전리품도 챙기지 않고 깡그리 파괴하여 버렸기 때문이다.
호레즘 샤, 무함마드는 혼자라도 살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무함마드에게 버림받은 사마라칸트는 움직이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무참한 대 학살이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
과수원과 작은 숲이 정겨웁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들판,
이름모를 수초와 연꽃이 만발한 연못,
평화스러운 농지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
기온은 온화하여 춥지도 덥지도 않았고,
공기도 쾌적한 무릉도원이었다."
칭기스칸의 참모인 거란인 야율초재의 사마라칸트에 대한 기록이다.
칭기스칸은 제베와 슈베데이에게 무함마드를 저승까지 정중히 모시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제까지 대륙의 절반을 호령하던 영웅 무함마드는 공포에 질려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무함마드의 추격대는 그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시 전체를 무자비하게 몰살을 시키는 파격을 저지르며 무함마드를 압박하였다. 이렇게 돌아가자 백성들은 자신들의 영웅 무함마드를 칭기스칸보다 더 악랄한 저승사자로 여겼다.
칭기스칸의 유일한 맞수, 영웅 무함마드는 찬밥 한 덩이 구걸할 곳을 찾지 못하고 카스피해의 어느 섬 안에서 굶어죽고 말았다.
무함마드의 추격대는 그가 죽고 난 뒤에도 회군을 하지 않고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지나 서쪽으로 진군을 하면서 약탈과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하였다. 그러다 중동의 모랫 바람에 진력이 난 그들은 러시아 쪽으로 방향을 돌려 아르제바이잔과 그루지야 지역을 초토화 시키며 흑해연안의 초원지대인 카프카스에서 8만명의 러시아와 킵착의 연합군과 마주쳤다. 8만명의 연합군을 한 순간에 궤멸시킨 몽
골군은 겨우 2만명이었다.
그들은 러시아의 귀족들을 잡아다가 땅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고 술판을 벌렸다. 움직여 술잔이 넘치거나 쏟아지면 가차 없이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술판이 끝났을 때 그 아래에 있던 귀족들은 겁에 질려 똥오줌을 지리면서 모두 죽어있었다. 전대미문의 학살자 제베와 슈베데이의 몽골군은 돌아갔으나 칭기스칸의 큰 아들 조치는 그 지역에 남아서 킵차크 한국을 세운다.
한편 칭기스칸의 주력군은 무함마드의 아들 잘랄웃딘을 추격하고 있었다. 호레즘의 옛 수도 우르겐치에서 잘랄웃딘은 1년 동안 항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가 1년이나 버티자 칭기스칸은 예의 초토화 작전으로 이웃 도시 아프가니스탄과 후라산의 쿠
르드족을 잔인하게 도륙을 하였다. 그 동쪽의 발흐 지역도 짓밟아 버렸다. 한나라의 장건이 찬란한 불교의 꽃이 핀 나라이며, 큰 절마다 3000명의 승려들이 수행을 하였다고 소개하였던 대하국이 바로 그곳이다. 당나라의 삼장법사도 대당 서역기에 그렇게 기록을 했던 곳이다. 찬란한 불교의 불꽃은 그렇게 사그러 들고 말았다.
발흐를 페허로 바꾸고 지금의 이란의 한가운데의 니샤프르에서 칭기스칸의 사위 토쿠차르가 전사하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남편과 함께 전장을 누비던 토쿠차르의 과부는 남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니샤프르의 모든 주민들을 죽이는 데만 꼬박
사흘, 행여나 살아있는 것들이 있을까봐 확인하는데 만도 또 사흘이 걸렸다. 그 젊은 아낙은 그 곳에서 단 한가지의 전리품도 챙기지 않고 오히려 남겨 두었다.
산더미 보다 더 많은 시체들을 .....
칭기스칸의 손자 무투겐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명한 바미안의 석불앞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진노한 칭기스칸은 자신이 직접 선봉에 서서 학살을 자행 하였다. 움직이는것은 무엇이건 부수고 죽였다. 후에 사람들은 바미안을 저주받은 도시라고 불렀다.
1221년의 일이었다.
수백 년 후, 그 바미안의 대 석불은 이슬람 원리주의자 탈레반군에 의하여 폭파되어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높이 53미터의 거대한 불상이 폭싹 내려앉는 장면 은 지 구 촌 의 모 든 테 레 비 를 통 하 여 중 계 되 었 다 .
2001년 2월의 일이다.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는 법,
모든 것은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 되는 법,
모든 생명은 지켜져야 될 올바른 진리가 있는 법,
설사 미물의 살육이라도 하늘의 뜻이 아닌 법"
대륙의 반대편 산동의 도사, 장춘진인 구처기가 수만리 떨어진 그 곳에 나타나 칭기스칸에게 하늘의 이치를 일깨워 주었다. 미인과 성직자 기술자 지식인과 현자들을 우대하는 칭기스칸은 그의 쓴 소리를 다소곳이 받아들이고 이슬람 원정 6년 만에 귀환을 하게 된다.
1225년의 일이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이었다.
몽골의 스텝들이 사다 달라고 부탁한 약이 있었다. 춥지 않게 피부에 바르는 약,
추운데서 활동하는 빙상 선수들이나 발레리나들이 바르는 연고인데 그것을 바르면 춥지 않다고 했다. 무슨 그런 약이 다 있을라고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한편으론 요즈음이 어떤 세상인가? 비아그란가 뭔가 하는 약도 있어 고자에 가까운 사람도 칭기스칸 못지않게 용을 쓸 수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어떤 기록을 보면 칭기스칸은 생전에 500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고 하는데, 어떤 근거에서 그런 계산을 하였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손자 쿠빌라이가 옹기라트 소녀들을 사흘에 여섯 명씩을 자신의 침실로 불러 들였다고 하는데 칭기스칸은 겨우 500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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