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랭루즈의 남성 무용수, 뮤우
오늘은 흑인 남성의 누드를 찍기로 한 날입니다.
역시 여왕과는 갈등이 일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작품에 대한 의욕이 지나쳐서 일어나는 일이긴 합니다.
머릿속에는 늘 황량한 풍경이 그려지곤 했었죠.
파리란 정형화된 도시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닌 탓인지 그러한 갈망은 더욱 심화 되고 있었습니다. 좁은 골목길, 사람과 차가 뒤엉켜 숨 가쁘게 움직이는 번잡함, 소음, 분진, 악다구니, 돈가스 접시만한 탁자, 엉덩이가 삐져나오는 좁은 의자들, 카페.... 조밀한 건물과 건물 사이, 육중한 대문, 굳게 잠긴 철옹성 파리는 숨통을 무지근하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공허한, 황량한, 텅 빈 황무지가 그리웠습니다.
바람마저 쓸쓸한 그런 곳 말입니다.
여왕에게나 안내인 정에게나 그러한 생각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강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강어귀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갈대와 잡초와 백사장, 갯버들이 듬성듬성 자라는 드넓은 강가를 그려 보았습니다.
여왕이 마침 좋은 곳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근사한 강가인데 인적이 드물어 촬영할 만하다며 안내인에게 지도를 펼쳐들고 지시를 했습니다. 정씨는 이곳쯤에 그런 장소가 없을 거라며 고개를 갸웃하며 불안해하는데 마마의 지시가 떨어졌으므로 거역할 수도 없는 형편, 여왕께서 또 일을 그르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별 수 없어 따르기로 하였죠.
뮤우는 유명한 물랭루즈의 쇼맨입니다.
뮤우는 저녁시간에 쇼가 잡혀있어 촬영을 일찍 마쳐야 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 사정이면 오전 중에 촬영 시간을 잡든가, 출발 전부터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었습니다. 뮤우는 수입이 좋아 근사한 스포츠카와 고급 스즈끼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는데, 오늘은 오토바이를 타고 왔습니다. 커다란 소품가방을 등에 지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나 크기가 프리실까의 소품가방과 흡사했습니다. 과연 전문가들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모양입니다.
파리엔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많은데, 오토바이는 낮에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니고, 헬멧 등 안전장비를 철저히 갖추고 탑니다. 뮤우 역시 더운 날씨임에도 두터운 가죽점퍼를 입고, 가죽 바지, 가죽부츠를 신었습니다, 얼굴엔 두건을 쓰고, 그 두건위에 니트 모자를 쓴 후, 그 위에 커다란 헬멧을 착용하였습니다. 켈트족 전사를 연상 시킵니다. 등에 커다란 소품 가방을 메고, 오토바이 위에 납작 엎드려 우리차를 따라 질품같이 달리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보입니다.
드디어 도착한 강가는 역시 한심+ 한심.
아득하게 넓고, 황량한 강변의 분위기를 상상한 내가 정녕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폭은 10미터도 채 안 되는 도랑 같은 곳이었는데, 탁한 녹색물이 가득한 수로에 불과했습니다. 더구나 주택가 한가운데였고, 정박해 있는 즐비한 소형 배들엔 사람들이 살고 있어 매우 부산한 모습이었죠. (파리는 집값이 비싼 탓인지 작은 보트 속에 사는 사람들이 퍽 많습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뛰어놀고, 벤치엔 실연당한 처녀가 하염없이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가 이런 곳을 누드 촬영장소로 추천하다니.....'
그러나 이 정도의 황당한 일은 늘 있는 일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일 뿐, 다른 누군가가 내 생각에 꼭 맞는 그런 장소나 환경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가능치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다급합니다. 파리에선 마음 놓고 촬영을 해보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우리들의 행동이 수상해 보였는지 아이들과 벤치에서 시름에 젖어 있던 처녀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습니다.
상체만을 벗고, 몇 컷 누르며 적응을 시도하는데, 경찰관 둘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허리엔 그 무시무시한 쇠몽둥이가 덜렁거리고 있었죠.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상체만 벗고 있어서인지 별 탈 없이 돌아갔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장소 이동을 의논했습니다. 뮤우가 근처에 조용한 곳이 있다며 추천을 하였습니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기위해 차려입는데만 많은 시간을 허비한 다음, (그 시간이 굉장히 길 게 느껴졌습니다.) 오토바이는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또 숲이었습니다.
촬영 당시엔 몰랐는데, 숲을 빠져 나오면서 보니 그 곳은 블로뉴의 숲이더군요. 불로뉴의 숲이라면 수 없이 싸돌아다니던 곳입니다. 파리의 허파라고 불리 우는 그 숲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숲속에서 낮 걸이를 하고 버린 엄청난 양의 콘돔들이었습니다. 블로뉴 숲인 줄 알았으면 콘돔들이 무수히 쌓여 있던 그 장소에서 누드 촬영을 꼭 했어야 되는 건데....
(여담이지만 불로뉴의 숲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낮 걸이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필자의 카메라에도 늙은 70대의 창녀와 늙수그레한 노동자풍의 사내가 흥정을 마치고 관목아래 으슥한 곳에 모포를 까는 것이 목격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매춘법을 통과시키고 그 공으로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가 매춘법을 들고 나오기 전 까지의 불로뉴는 굉장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내 눈엔 광장하지만 .....)
뮤우는 혼혈아였는데, 우람한 덩치에 잘 발달한 근육, 두툼한 가슴, 굵은 팔뚝, 탄력이 넘치는 피부에 얼굴까지 준수하였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육체 외에도 남다른 재능이 있을 터였습니다. 물랭루즈라는 파리의 대표적인 업소에서 쇼에 참여를 하고 스포츠카와 오토바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잘 나가는 킹카임이 분명할 터였습니다.
신이 퍽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겐 보잘 것 없는 외모와 돈을 벌 수 있는 재능도 없고, 외에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을 준 적이 없었음에.....
뮤우와 하얗고 앙증맞은 여왕마마가 듀엣으로 연기를 한다면 틀림없이 좋은 작품이 나올 것만 같았죠. 검고 우람한 육체가 꺾어든 한 떨기 청초한 하이얀 구절초, 같잖지도 않은 강가를 추천하여 속상한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환상적인 작품이 머릿속을 메웁니다.
나의 상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역시나 여왕이었습니다.
한국인 안내인이 따라왔는데 어떻게 옷을 벗겠느냐는 것이 핑계였습니다.
파리의 교민사회는 아주 웃겨 자칫 소문이 잘못나면 크게 다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마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교민 신문을 보면 교민사회의 기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참히 꺾인 야망은 독화살이 되어 녀석을 향하여 날아갔습니다.
"야 임마 뭣하냐? 촬영 준비 안하고, 해 떨어지고 있잖아 임마, 열중쉬어 차렷, 어라 눈깔아,"
선량한 눈빛에 겁을 잔뜩 먹었습니다. 녀석 착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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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버려져 쌓인 콘돔이 더께로 뒤덮여 만들어진 길, 마치 수펀지처럼 폭씬 폭씬 하다.
흥정중인 70대의 매춘녀와 고객, 그들은 흥정을 마치고 숲으로 들어 갔다.
* 누드 작품은 한국사진방송에 올려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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