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마슈트라
간볼라는 카라우나스의 후예이다.
카라우나스란 인도인 어머니와 몽골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을 말한다. 과거 몽골인들은 인도를 침공하여 델리근처까지 쳐내려갔다. 당시에 몽골군은 인도에 자신들의 씨앗을 뿌리거나 인도 지방의 수 많은 여인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캐시미르지방엔 고행을 하여 도를 깨우치고자 하는 은자들이 많다. 은자들은 신앙에 어긋나는 어떤 죄도 범하려 하지 않고 고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은자들은 정결하게 먹었고 세속적인 것들을 탐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성욕을 잘 다스리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러나 성욕을 죄라고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도라고 여겼다. 카마슈트라는 그러한 생각이 결집된 고대 성전이다.
그들의 성은 솔직 담백하였고 대담하였다. 여자가 먼저 동침을 요구한다면 죄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도를 닦는 은자가 먼저 음욕을 품고 여자에게 접근을
한다면 그것은 죄악으로 여겼다.
여자들의 피부는 검고 야위었지만 매력이 넘쳤다. 그 지방 사람들은 아내를 서른명이나 둔 사람도 있는데. 아내의 집안에게 몸값으로 가축이나 현금 또는 노예로 값을 치루어야만 혼인을 치룰 수 있으므로 집안이 부자인 사람들은
여러명의 아내를 두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형제 여럿이서 단 한명의 아내를 돌아가며 잠자리를 가졌다.
남편은 아내들 가운데 자신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아내는 마음대로 쫒아 내고 또 다른 아내를 사다가 혼인을 치루기도 했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도 값을 치루고 사올 수도 있으며 자기의 사촌이나 아버지의 부인을 아내로 삼기도 하였다
몽골제국의 네코달은 델리의 앗딘 슐탄을 죽이고, 피부가 흰 몽골인들에게 피부가 검은 인도 여자들을 나누어 주었다. 몽골인들은 인도 여자들을 더러는 데려가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버리고 떠나 버렸다. 그 인도 여자들이 낳은 아이들을 카라
우나스라고 했는데, 잔인하고 용감하였다. 특히나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여자들은 미모가 출중하였고 자유분방하고 활달하였다.
항상 남편들에게 봉사하기를 즐거워 하였고 남편이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고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다.
그들에겐 기묘하고 신비로운 풍습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손님이나 나그네가 찾아오면 매우 즐겁게 맞이 한다는 것이다. 길손을 맞은 남편은 아내에게 나그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 든지 다 해주라고 지시를 하고는 출타를 하여 버린다. 부인들
은 매우 순종적이라서 남편의 뜻에 따라 나그네를 남편처럼 받들어 모셨다.
나그네는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그 집에 머물며 자신이 원하는대로 부인의 정성스러운 봉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난폭하여 죄없는 사람들을 많이 살해한 것에 대한 속죄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보시를 행함으로써 많은 자식들을 점지하여 주실것이고 또 많은 복을 내려 재산이 불어나고 행복이 따른다고 믿었다.
몽골의 멍케칸은 그것은 명백한 간통행위임으로 예케 자사크의 법령에 따라 앞으로 나그네를 부인과 함께 재우면 엄히 처벌할 것이라는 엄몀을 내렸다. 이들은 멍케칸의 명령에 따라 나그네들을 더 이상 자신들의 부인과 함께 재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지방에 계속 흉년이 들고 농산물의 수확이 줄고 전염병이 도는 재앙이 계속되자 그 원인으로 부인들의 몸보시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부처님의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자신들의 아내들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탄원서를 올렸다. 멍케칸은 크게 한숨을 쉬며
"너희들의 아내들이 나그네들에게 몸보시를 그렇게 좋아하면
너희들 풍습대로 하면서 살라"
는 칙령을 내리고 말았다. 마르코 폴로가 내 귓불을 간질이며 전해준 간볼라의 조상들 얘기이다.
간볼라의 피부는 우유처럼 희고 수밀도처럼 맑은 기운이 감돌지만 눈동자등을 자세히 보면 어딘지 이방인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것이었다. 카라우나스들은 노는것을 즐거워 하고, 악기를 잘 연주하고 또 춤추기를 즐거워 했다. 정말이지 간볼라는 놀기도 좋아하였고 노래를 참 잘하였다. 모씨가 상금을 걸고 노래자랑을 하였을 때 그 상금을 가져 간 사람도 간볼라였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신문지처럼 구겨져 있는데 뒷좌석에서부터 구성진 노래 소리가 이어진다. 누군가 시작한 노래를 받아 합창이 이어지고 있었다. 낯선 가사 낯선 가락이었지만 구성지게 울려퍼지는 그 노래는 감미롭기 그지 없었다. 몽골인들
은 너나 할 것 없이 노래를 참 잘 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화음도 잘 맞고 구성지게 장단이 맞고 호흡이 잘 넘어간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그들은 나이트 클럽을 갈 것인가? 가라 오케를 갈 것인가를 의논들을 하고있다. 몇 몇 사람들은 돌아가고, 몇 몇 사람들은 남았다. 나는 다 귀찮고 힘들어 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
가라오케.
우리 나라 노래방과 흡사했다. 단지 술을 마실수 있다는 정도만 다르다. 역시 노래들은 다 잘한다. 모씨가 약간의 상금을 걸자 더욱 열기가 뜨거워 졌다. 두 팀으로 나누어 경연이 벌어졌는데 간볼라와 아므르 자갈이 간드러진 가창 실력을 뽐낸다. 아무르 자갈은 일본 가요들을 주로 불렀는데 귀에 익은 곡도 있어 반가웠다.
"요꼬하마 ....."
어쩌고 하는 노래로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져 있는 노래였다. 간볼라는 팝송도 잘하여 더욱 친숙한 마음이 들었다. 간볼라가 상금을 가져갔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자 귓가에 아득한 평원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맴돈다. 눈을 감으니 지평선을 가득 메우며 무수한 기병들이 풍진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다. 대 평원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군상들의 영혼들이었다.
금나라의 시조, 함보(Akhutai. Altan khan 아골타이)일행은 고려에서 왔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 형 아고내는 불교도라 고려에 남았다. 아고내는 함보에게 "우리들은 반드시 다시 모일 것이다." 며 고별을 했다. 함보의 성은 김인데, 애신각라(Akhutai:愛新恪羅 )라고 한자로 표기하여 신라를 사랑한다는 뜻임으로 신라 사람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완안부의 복간수 강변에 터를 잡았다. 후에 함보가 세운 금나라가 크게 번창하자 아고내의 무리들도 갈소관에서 합류 하였다. 그들은 거란(요나라)을 멸하고, 양복간답자를 보내 발해도 한 가족이니 뭉치자고 했다.
- 금사, 송나라의 송막기문, 신록기.-
금나라를 세운 함보일행은 기록으로 보면 지금의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원전 6세기를 전 후하여 여진, 숙신, 주신, 주센, 만주족 등으로 기록되었는데 조선(고조선)과도 같은 말이다.
1115년경 영웅 아골타이(함보)는 고려의 북방과 고구려의 옛 영토를 모두 장악하여 대주신 제국(Jushin 금)을 건국한다. 아골타이는 독립과 아울러 제도를 정비하고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125년엔 송나라와 동맹을 하여 키타이(거란족)들이 세운 요나라를 멸망 시켰다. 금나라에 정복당한 요나라의 유민 야율대석은 몽골고원으로 달아난다. 그가 도망쳐 잠시 머문 곳은 어쩌면 우리들의 버스가 눈더미 속에 쳐박혀 분탕질을 친 그 어디일는지도 모르겠다. 야율대석은 1132년, 서쪽으로 진출하여 중앙 아시아지역에서 돌궐계가 세운 이슬람 왕조 카라한 왕국을 공격하여 정복하고 카라키타이(서요)를 세웠다.
한편, 송나라와 동맹을 하여 요나라를 제거한 금나라는 동맹국으로 형제처럼 지내던 송나라로 칼날을 돌려 세운다. 금나라의 알탄칸(함보의 몽골명)은 송니라의 수도 카이펑을 느닷없이 공격하여 동맹국이라고 믿고 넋 놓고 있던 황제 흠종을 포로로 잡아 변소청소를 시켰다. 이때 송 황제 흠종은 알탄칸을 "변과 소변사이에서 태어난 더러운 놈" 이라고 욕하며 변소청소를 했다고 한다.
요나라를 멸망시킨 그 이듬해인 1126년의 일이다. 이것을 중국에선 "정강의 변' 이라고 기록하며 아주 수치스러운 역사로 보고 있다. 금나라에게 수도를 빼앗긴 송나라는 남쪽 항저우로 쫓겨 내려가 남송시대를 연다.
촬영을 시작한지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몽골의 별들처럼 무수한 사연들로 점철되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스탭으로 활약 중인 청년들의 숫자만도 10여명, 모델로 활약하는 몽골여인들의 숫자가 16명이다. 외에도 촬영 팀에 진행 부장격인 모씨까지 합치면 초원의 한 종족은 실히
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촬영은 별처럼 많은 사연에 비하여 사진은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울란 바토르의 변두리는 산자락을 끼고 오밀조밀한 판잣집과 겔들이 대규모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세계 제일의 빈국으로 전락한 대 몽골제국의 백성들기에 생활이야 안 보아도 뻔하겠지반, 옹기종기 조형적인 패턴을 이룬 서민들의 가옥들은 하얀 눈과 잘 어울려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승화되고도 남는다
* 이곳에 다 올리지 못한 자료와 누드작품등은 한국사진방송 올려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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