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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일 토요일

흑진주 캣 우먼의 누드 파리에 똥침을 놓다 32 한국사진방송 김가중


흑진주 캣 우먼의 누드 파리에 똥침을 놓다 32 한국사진방송 김가중


오래전부터 누드 촬영을 해온 터라 쭉쭉빵빵한 예쁜 대상만을 찍고 싶다는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양성으로 시각이 옮아갔죠. 할머니, 할아버지, 임신부, 흑인등 대상의 폭을 넓히고 싶은 욕구가 있었죠.
갈망의 대상은 칠흑같이 검은 피부의 흑인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나오미 캠벨의 미꾸라지 같이 매끄러운 몸매가 뇌리에 각인 된지 오래입니다.
진흙을 이겨 바른 투박하고 거친 토속적인 벽에 검은 피부를 배치하고, 그로데스크한 조명을 비추고 싶었죠. 검은 벽, 밤같이 까만 피부, 하얗게 빛나는 눈동자는 전율케 하는 내 마음속의 영상입니다..

뉴기니의 이리얀 자야의 다니족들의 인류 본연의 나신이 그리웠습니다. 아직도 석기시대의 생활을 유지하는 토속적인 그 인체에 고도로 발달한 현대인의 나신을 대비시켜 촬영해 보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란 생각을 떨 굴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흑인 모델을 오래 전부터 구해보았으나 생각보다 쉽지를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캣 우먼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야외촬영에서 혼쭐이 난 터라 이번엔 스튜디오를 빌렸습니다.
프랑스는 니엡스에 의해 사진이 처음 태동한 사진의 종주국입니다. 당연히 사진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프랑스에서 사진을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그룹 매그넘도 프랑스를 주축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뉴욕으로 그 판도가 넘어가 있지만 파리는 오랫동안 세계 예술의 중심 역할을 도맡았었고 여전히 영향력이 막강한 도시입니다. 당연히 스튜디오가 근사하여 작가가 감각이 있고 없고 간에 그 시설만으로도 기본적인 수준의 작품이 나와 주리라 생각하고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죠.

본디 누드 사진이란 모델이 90프로의 비중을 차지하는 법이죠.
모델이 빼어나게 아름답다면 작가는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사진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주변 여건이 좋아야 작품이 좋아 진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스튜디오인데. 스튜디오는 설치된 조명과 배경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어야 좋은 작품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헌데 오늘 빌린 스튜디오는 아예 얘기를 말고 넘어 가야겠네요. 단지 여기 사진의 종주국 맞아? 라고 한마디만 하죠.

오랫동안 흑인을 찍고 싶었던 열망도 오늘로 끝입니다.
촬영을 하는 내내 이토록 촬영이 지겨웠던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특히 힘들게 했던 것은 그 흑인 여인의 음부입니다. 이미 말했 드시 한국에선 음부를 가리기 위하여 갖은 지랄을 다 떨어야 됩니다. 비단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촬영순간에 고려하거나 생각해 주어야 될 상황들이 너무도 많은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델들은 전문 모델이거나 아마추어 모델이거나 관계없이 자신의 치부를 교묘히 감추는데 아주 능합니다. 행여나 카메라가 자신의 치부 쪽으로 향하는 기색이 보이면 발끈하여

"그 쪽에서 찍지 마세요." 혹은 "이럴 때는 이렇게 찍으세요,"

라며 사진작가의 머리꼭대기에 앉아 작가를 조종까지 하려고 합니다.

결국 작가는 그렇게 한번 지적을 받고 나면 기분을 완전히 잡쳐 사진을 망치게 됩니다.
사진작가는 모델과의 신경전 외에도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녀는 한국의 여느 모델들과는 달리 자신의 음부를 가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단 그녀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모델들은 대부분 누드촬영이란 당연히 자신의 음부까지도 노출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영화감독과 함께 나를 찾아온 어느 배우는 아에 자신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벌린 클로즈 엎 사진을 들고 와서 나를 한숨짓게 하기도 하였으니까요,
그녀의 그 곳은 사막같이 황량한 느낌이었습니다.
불모의 대지, 숨막히는 갈증, 습기 없는 메마른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는 황야 같은 겨울의 빈 들판 같았죠. 그녀의 주변은 넓은 편이었는데 음모를 면도하여 더욱 넓어보였죠.(당시의 그 느낌을 한국에 돌아와서 그대로 재현해 보려고 음모 깍기 누드 촬영회를 열었고 기자들까지 초청하여 벌린 이 헤프닝은 한국의 문화와 맞물려 호된 비난으로 이어지며 대 실패를 하기도 하였죠. 당시의 사건(?)은 신문이나 언론에 단 한 줄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바쁜 일정 마무리되면 당시의 작품들과 상황도 연재하여 보겠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찍은 여인들은 다 털을 깎았었죠.
우리의 영왕 리도 칸느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히 음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파리에서 다시 촬영했을 때는 어느새 음모를 가운데만 1자로 남겨두고 주변은 모조리 밀어버렸더군요.
황인종인 리는 흉측스럽다는 느낌이 일지는 않았었는데 그 흑인 여인은 방대한 넓이의 털을 깎은 흔적이 촬영 내내 나를 괴롭혔습니다.

계속

관련주드작품은 한국사진방송>커머셜컨텐츠난에 올려 둡니다.
http://www.koreaarttv.com/section.php?thread=11&flashMenu=4

아르누보란 국수가락스타일 (누우 스타일)이라고도 하는데, 곡선의 뒤틀림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빅토르 오르타가 창시를 하였죠. 베베 비틀린 곡선이 주는 상상력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2차대전까지의
"새로운 미술"
이란 예술사조로 인기를 끌었었죠.
퐁피두 대통령의 힘으로 세운 프랑스 현대미술의 메카 퐁피두 센타 앞 광장엔 이런 류의 예술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장난감 이상으로 보이진 않았고 오히려
퐁피두 센타 옆의 공사장 가림막의 낙서가 더 예술이란 느낌을 받았으니....

퐁피두 대통령의 영향으로 건립된 퐁피두센터는 프랑스의 현대미술의 메카로 건물 안이나 건물 벽속에 들어가야 될 구조물들이 모조리 건물 바깥으로 쫓겨난 독특한 누드설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죠. 배창시가 배 밖으로 나온 경우라나요?
이 거대한 컵은 나같이 뱃구레가 큰 사람도 다 먹지 못 할것 같군요. 어느 유명한 예술가가 예술이란 좆다 아이다 실물보다 아주 크거나 실물보다 아주 작으면 곧 예술이다. 라고 짖어대며 인간의 손가락이나 좆, 또는 파리 같은 곤충을 무지막지하게 크게 만들어 세계 곳곳에 엄청 비싸게 많이 팔아먹었답니다. 여기 이 컵도 우리나라 어디에선가 본 것 같네요.



르네상스 시대의 이노상 분수,
시체가 잘 썩는 특별한 지역이라 오랫동안 공동묘지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역사의 소용돌이가 미쳐버리자 매일 밀려드는 시체가 미쳐 다 썩지 못해 냄새가 진동하는 음침하고 기분나쁜곳이 되었죠.

" 해부학 조교와 의과 대학생들은 묘지로 향한다. 시체가 반갑게 그들을 맞이
한다. 성인은 30프랑, 어린이는 20프랑 죽으면 이 정도의 값밖에 안나간다.
이건 누가 정했을까 "

- 알프렌느 딜보의 파리의 24시 중에서 -

그 해골들을 카타콤으로 옮겨 버리자 젊은이들의 성소로 변하여 진동하던 썩은 냄새는 향기로 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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