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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 씨가 머무는곳, 승광재(承光齋) 한국사진방송 유지훈 기자


조선의 마지막 황손 이석 씨가 머무는곳, 승광재(承光齋)
- 비둘기 집을 부른 조선의 황손 이석, 2004년 10월에 전주로 내려와 -





전주시 한옥마을 에 위치한 조선왕조의 발생지 경기전에서 조선조 마지막 황제인 고종황제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드님이신 황손이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승광재(承光齋)에서 살고 있어 찾아가 보았다.

승광재(承光齋)의 '광(光)'은 그냥 빛이 아니라 1897년 성립된 대한 제국 연호인 광무(光武)의 빛을 말한다. 승광재는 고종(1863~1907) 황제의 손자이며 '마지막 황손'인 이석(64 ·본명 李海錫) 선생의 전주 정착을 위해 조성한 집이며, 관광객들이 한옥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방도 4개 있다.

`비둘기 집'을 부른 가수 이석씨.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로 국내에 있는 유일한 황손이지만, 방 한칸도 없이 찜질방을 떠돌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전주시장이 황손을 전주로 모시고 오게 된 것이다. 1941년 의친왕의 아들로 태어난 이씨는 이승만 정권 수립 때 황실 재산이 국고에 환수된 뒤부터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석은 <비둘기집>을 노래한 '황손 가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황손'으로 대접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따라다니는 상표 같은 것이었을 뿐,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은 그의 삶, 거듭된 결혼 실패, 찜질방을 전전했던 최근의 삶이 더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석의 정체성은 누가 뭐라고 해도 황족이며, 그 신분은 그가 원한다고 해서 벗어던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종은 사실상 세 아들을 두었다. 순종(1874~1926, 명성황후 소생)·의친왕(1877~1955, 귀인 장씨 소생)·영친왕(1897~1970, 귀인 엄씨 소생)이 그들이다. 이석은 의친왕의 11번째 아들이다.

순종은 임금이 되었지만 후사가 없고, 영친왕은 이방자 여사와 결혼해 이구 씨를 낳았지만 집안 전체가 일본화됐다. 영친왕은 일본군 중장을 지냈고, 그 외아들 이구 씨는 스탠퍼드대학 공학 박사가 되었지만 한국말을 할 줄 모르고 후사가 없다.

지금은 무속에 조예가 있는 일본 여인과 살고 있다. 반면 의친왕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기골이 장대했고 일본 황실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대동단이라는 독립 운동 단체에 참여해 중국에 망명 정부를 세우려다 발각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일제의 혹독한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그러니까 오늘의 시점에서 황실의 정통성은 의친왕에게 있다. 의친왕은 7명의 여인에게서 13남 9녀의 자손을 보았다. 이석은 이 무겁고도 초라한 역사의 무게를 지고 의친왕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마지막 황손 이석 선생은 2004년 10월에 전라북도 전주 한옥마을 승광재(承光齋)에 입주하였고, 2005년부터 전주대학교 사학과에 객원교수로 출강하고 있다고.





<본 기자와 포즈를 취한 황손 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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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hoon815@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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